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새러토가 전투 (문단 편집) === 프리먼 농장 전투 === 1777년 9월 19일, 버고인은 베미스 고지에 주둔한 대륙군의 요새로 진군했다. 그는 고지의 서쪽 측면을 장악한 뒤 거기서 적 요새를 향해 포격을 가해 적군을 몰아낼 계획을 세웠다. 사이먼 프레이저 준장이 이끄는 영국군 우익은 숲으로 진입해 깊은 계곡의 북쪽 측면을 따라 진군했고, 영국군 중앙은 버고인 본인의 지휘하에 요새에 주둔한 대륙군과 대치했으며, 좌익의 [[헤센]] 용병대[* 사실 헤센 출신이 아니고 브라운슈바이크 출신의 군대였지만 당시에는 이미 들어와서 활약하던 헤센 군대를 독일인 용병의 대명사로 통칭해서 불렀다. 이 독일인 용병들은 헤센-카셀, 헤센-하나우, 하노버, 브라운슈바이크 등등 남독일 출신들이 많이 포함됐다.]는 리데젤 대령의 지휘 아래 강가에 있는 배들과 보급품을 지키는 임무를 맡았다. 대륙군 총사령관 [[호레이쇼 게이츠]] 소장은 영국군의 이같은 움직임에 대응하지 않고 요새에서 버티기로 했다. 그러나 아놀드는 영국군의 의도를 눈치채고 별동대를 이끌고 숲을 헤쳐 진군하는 적을 요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게이츠는 처음엔 거부했지만 아놀드가 끈질기게 설득하자 마침내 그가 약간의 경보병대와 모건의 저격수들을 데려가는 걸 허락했다. 아놀드는 곧바로 병사들을 이끌고 영국에 충성을 맹세한 존 프리먼의 농장에 펼쳐진 들판으로 나아갔다. 모건의 저격수들은 곧 영국군 우익의 선두에서 진군하고 있던 제임스 해밀턴 대령의 부대를 목격했다. 모건은 부하들에게 영국군 장교를 저격하라고 지시했고, 부하들은 명령에 따라 적 장교들을 저격해 다수를 사살시켰다. 이에 해밀턴 대령이 급히 퇴각하자, 모건은 적을 추격했다. 그러나 곧 프레이저의 본대가 나타나자, 모건은 부하들을 이끌고 숲 속으로 숨었다. 이후 아놀드는 추가 병력을 투입해 오후 내내 프리먼 농장을 둘러싸고 영국군과 격렬한 전투를 벌였다. 아놀드는 게이츠 소장에게 지원 병력을 보내달라고 요청했지만, 게이츠는 이를 거부하고 오히려 철수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러나 아놀드는 이를 거부하고 전투를 계속 이어갔고, 프레이저는 적의 끈질긴 저항으로 고전을 면치 못했다. 이 무렵, 리데젤 대령은 후방에서 보급품들을 지키던 중 숲 속에서 총격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는 걸 보고 아군이 고전하고 있다는 걸 눈치챘다. 그는 서둘러 헤센 용병대를 이끌고 숲을 헤치고 나아가 아놀드의 군대 우측면으로 향했다. 이것을 본 아놀드는 전투를 중지하고 배미스 고지로 후퇴했다. 영국군은 비록 프리먼 농장을 장악하긴 했지만 애초에 목표로 삼았던 고지 장악에 실패했고, 600명의 사상자 및 포로를 기록했다. 반면 대륙군의 손실은 350명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